엘리자베스 2세와 블루마운틴 커피의 진실 [박영순의 커피 언어] > 갤러리스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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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자베스 2세와 블루마운틴 커피의 진실 [박영순의 커피 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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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갈형린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22-09-19 10:29 조회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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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타깝게도 커피가 품질만으로 대접받는 게 아니다. 마음을 움직이는 드라마틱한 이야기가 곁들어지면, 때론 과분한 평가를 받기도 한다. 일부 커피가 권위를 갖기 위해 쓰는 수법 중 하나가 왕, 왕실, 여왕, 황제 등 고귀한 단어들을 끌어다 붙이는 것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영국 왕실이 사랑하는 커피’라고 내세우는 자메이카 블루마운틴 커피 또는 세인트헬레나 커피, 탄자니아 킬리만자로 커피 등이다.‘왕’이 붙는다고 해서 반드시 존중을 받는 것은 아니다. 동양에서 임금 ‘王’자는 도끼의 형상에서 온 것으로 권력을 상징한다. 무시무시한 힘을 과시하는 왕을 함부로 붙여서는 ‘거지의 왕’처럼 풍자가 되어 되레 조롱거리가 되기 쉽다.그러나 ‘영국의 왕실’은 적어도 커피에서만큼은 최고의 품격을 보증하는 언어적 도구였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지닌 이미지 덕분이다. 영국의 식민 지배를 받은 여러 나라에서 ‘우리 시대의 헌신자’, ‘존경스러운 리더십’, ‘시대를 초월한 품위’라는 등 쏟아진 숱한 표현들이 그가 살아간 삶의 품위를 말해준다.



오크통에 담겨 판매되는 자메이카 블루마운틴 커피는 고급화 전략이라는 평가와 함께 가격을 높이는 ‘꼼수’라는 지적도 받는다. 커피비평가협회(CCA) 제공엘리자베스 2세에게 큰 빚을 진 게 자메이카 블루마운틴 커피이고, 그가 지닌 인문학적 파워를 상술로 펼쳐내 재미를 본 건 일본이다. 자메이카에 커피가 전해진 것은 영국의 지배(1655∼1962년)를 받던 1728년이다. 그러나 히스파니올라, 마르티니크 커피에 묻혀 빛을 보지 못하다가 1964년 국가 부도 위기에 처해서야 극적인 반전을 이루어 냈다.일본이 돈을 빌려주는 대신 블루마운틴 커피 중에서 최상급인 넘버원 커피를 전량 선점해 90%를 일본으로 가져가고, 나머지 10%만을 세계에 유통시켰다. 이러한 ‘인위적인 희소성’과 생두를 마대자루가 아닌 오크통에 담아 ‘비싸게 보이도록 꾸미는 전략’으로 단숨에 하와이 코나 커피와 어깨를 나란히 했다. 동시에 ‘영국 여왕의 커피’라는 수식어를 붙여 마치 왕실이 세상을 뒤져 가장 맛있는 커피로 선택한 것인 양 이야기를 만든 것이 주효했다.실제 엘리자베스 2세는 왕실에서 커피를 거의 마시지 않는 인물로 꼽힌다. 70년 재위 기간 동안 커피를 마시는 장면이 포착된 것은 1979년 2월 카타르의 베두인 텐트를 방문했을 때와 2001년 11월 요르단 국왕을 초청해 아랍 전통 커피를 나눌 때 등 손가락에 꼽힐 정도이다. 모두 일상에서 커피를 즐긴 게 아니라 의전이었을 뿐이다. 케냐 음베야 커피와 탄자니아 킬리만자로 커피, 세인트헬레나 커피 등도 ‘엘리자베스 2세가 사랑한 커피’ 또는 ‘영국 왕실의 커피’로 팔리며 귀한 대접을 받아왔다. 이들 커피는 영국 식민지에서 재배된 커피이자 물동량을 일본이 움직이고 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식민 지배를 받은 곳의 커피가 강점기 권력자의 명성에 기대어 호가호위하는 현상을 보는 것은 사실 당황스럽다. 이런 상술은 국내에서 특히 잘 먹히고 있다. 하와이 코나, 자메이카 블루마운틴, 예멘 모카가 ‘세계 3대 명품 커피’라는 말은 한국에서만 버젓이 떠돌고 있다. 이들 커피는 세계 물동량의 상당량을 일본이 좌우하고 있다.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이렇게 ‘세계 3대 명품 커피’를 꼽지 않는다.엘리자베스 2세의 서거와 함께 영국 왕실에 기댄 ‘희대의 커피 상술’도 이제 막을 내려야 한다. 권위를 빙자해 잇속을 챙기는 구태를 커피애호가들이 다시 발붙이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출처가 명확한 좋은 커피는 그 자체로 당당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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